류성실 작가와 그가 만든 기괴하고 때때로 측은한 가상의 인물은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통해 ‘예술’이라는 모종의 표식을 부여받았다.

성실한 류성실


프릴 터틀넥 톱은 에르메스(Hermès).


Photo Sangtae Kim ©Courtesy of the artist and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프릴이 돋보이는 니트 보디슈트와 스웨이드 고트스킨 부츠, 니트 오버니 삭스는 모두 에르메스(Hermès).


Photo Sangtae Kim ©Courtesy of the artist and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실크 코튼 블라우스와 패턴이 돋보이는 실크 레더 스커트, 스웨이드 카프스킨 롱부츠는 모두 에르메스(Hermès).


Photo Sangtae Kim ©Courtesy of the artist and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아뜰리에 에르메스 현장에서의 전시도 전무후무한 주제와 시각성으로 가득했던 것 같아요.
미술을 수치화하거나 등급을 매길 수 없잖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줘야 하는 ‘자기 증명’에 대한 압박이 있을 것 같아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상을 받았을 때의 느낌은 그랬어요. 에르메스 재단에서 주는 상을 받음으로써 제가 작가로서 저를 증명하는 데 쏟아야 했을 에너지를 온전히 작업하는 데 쏟아부을 수 있겠구나, 하는 어떤 안도감같은 걸 느꼈죠.

예술의 형태와 개념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유기적으로 변하고 있어요. 이대왕이 자기 사업의 마케팅 일환으로 클리셰로서의 ‘예술’을 차용한다거나,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의 욕망을 투사한다거나, 누군가에게 예술은 감상이 완벽히 배제된 완벽한 기능이나 자본이 되기도 해요. 류성실 작가의 예술은 무엇인가요.
이런 질문은 처음 받아봐요. 사실 굉장히 중요한 질문인데, 어떻게 답해야 할지 시간을 들여 생각해 보지 못했거든요. 제가 감히 대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대미술 작가로서 관객들이 제 작업을 어떻게 봐줬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살짝 맥락을 바꿔봐도 괜찮을까요? 현대미술이라는 단어가 주는 위압감과 오라가 있잖아요. 제가 이따금 ‘현대미술 작가’라고 소개될 때 그 거대한 개념에 무임승차하는 기분이 들거든요. 묘한 죄책감이랄까요. 이를테면 체리장의 영상 스트리밍 시리즈가 그냥 온라인상에서 유통될 때의 피드백과 미술관이라는 장소에서 전시될 때의 피드백이 완전히 달라요. 저는 양쪽 피드백이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현대미술 작품은 류성실 작가의 프로젝트로서···”라는 안내문을 듣거나 읽을 때는 여전히 당혹스러운 느낌이에요. 온라인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이 영상이 미술이기 위해, 미술로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관행적 유무형의 요소가 있잖아요. 전시 서문이 될 수도 있고, 캡션의 일부가 될 수도 있고요. 어쩌면 저는 그런 관습적 형식에서 최대한 벗어날 방법을 찾고 있는 것 같아요. ‘현대미술’에 무임승차하지 않을 방법. 그래서 더욱 미술관이 아닌 곳을 찾았죠. 아프리카TV나 유튜브 같은 플랫폼. 거긴 차라리 온라인 정글이거든요. 인간적 피드백을 기대하기 어려운 곳이지만 되레 체리장 선생 입장에서는 그런 피드백이 더 유효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어요. 온라인 정글은 미술관과 달리 정해진 문법이 없기에, 어쩌면 제가 더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작가로서.

Editor Lee Hyunjun
Fashion Lee Seungyeon
Photography Kim Sangtae, Noh Seungyoon
Art Song Yuli
Hair & Makeup Stella S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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