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별.

#MBFWRussia

Text Min Ji Kim

Photography & Text Min Ji Kim

 

아직도 어떤 직업란에 ‘패션 에디터’라고 적을 때면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뭔가가 있다. 특히 해외 출장이라는 명목하에 출입국신고서를 채울 때면 더더욱. 꿈을 이뤘다고 하면 거창하지만 패션 에디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해 2년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렸고, 다시 2년 여의 시간이 흘렀다. 누군가는 ‘고작’이라고 할 만큼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누군가는 ‘그게 대체 뭐길래?’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햇수로 5년째 이 직종에 있는 나에게 아직도 직업에 대한 대단한 환상이 있는 건 아니다.하지만 해외 컬렉션에 참석하기 위한 출장이라면 말이 다르다. 패션 에디터에 대한 동경은 해외 컬렉션 취재를 위해 출장을 가는 모습에서 시작됐을지 모른다. 이 일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했지만, 나에겐 너무 먼 일이라 생각해오던 것이 실현됐다. 첫 해외 출장은 아니지만 첫 해외 컬렉션이었다. 근데 뉴욕, 파리, 런던, 밀라노가 아니고 러시아? 아무려면 어때. 메르세데스 벤츠 패션위크 러시아(Mercedes-Benz Fashion Week Russia)가 자신들의 축제에 <데이즈드> 코리아를 공식 초청하고 싶다는 이메일을 보내왔을 때, 그리고 담당자가 나로 정해졌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 ‘나 좀 멋있는데?’

러시아의 공식 국가명은 러시아연방(Russian Federation). 북쪽으로는 북극해, 동쪽으로는 태평양에 면한다. 유럽인지 아시아인지 애매한 위치에 거대한 제국을 이루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나라다. 러시아에 대한 이미지는 사회주의, 냉전 시대, 발레, 얼어붙을 듯 한 추위, 그리고 고샤 루브친스키가 전부였다. 생경한 곳으로 떠날 때 대부분이 그러하듯 만반의 준비를 할 요량 이었다. 그러나 4월호 데드라인과 겹친 나의 첫 해외 컬렉션 출장은 ‘악’ 소리의 연속이었다. 출국 날 새벽까지 이어진 촬영으로 한숨도 못 자고 출발한 비행은 내가 지금 시베리아 상공에 있는지, 북한 상공에 있는지 가늠하지 못하게 했다. 모스크바 국제공항에는 러시아 패션위크의 공식 후원사인 메르세데스 벤츠의 셔틀 택시가 마중 나와 있었다. 서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더 큰 추위 속으로 향했다. 러시아 패션위크의 둘째 날부터 쇼를 볼 수 있었다. 자원 봉사자 알렉스 루베(Alex Rube)는 나를 패션위크가 열리는 마네지 광장으로 데려다줬다. 스케줄 관리는 물론 소위 말하는 빅 쇼를 추천해주는 전담 매니지먼트를
담당했다. 패션위크 주최 측의 이러한 수고는 러시아가 패션 산업에 얼마나 많은 투자와 정성을 쏟고 있
는지 여실히 느끼게 했다. 알렉스 루베의 도움 아래 가장 처음 본 쇼는 ‘Sensus Couture’. 온몸에 금색과 은색 펄을
칠한 동상 같은 퍼포머를 배경으로 컬렉션이 시작됐다. 생각했던 러시아 패션에 대한 이미지가 첫 쇼에서부터 와
장창 깨졌다. 내가 아는 모스크바 출신 디자이너는 포스트 소비에트 시기에 청년기를 보내며 형성된 특수한 미적
정서를 반영한 패션으로 현재 가장 급진적인 디자이너로 주목받고 있는 고샤 루브친스키뿐이었으니까. 그와 절친
한 뎀나 바잘리아도 구소련의 문화를 간직한 조지아 출신이다. 최근 패션계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두 디자이너
의 이름만으로 러시아 패션을 속단한 것은 나의 잘못이었다. ‘쿨’하고 ‘힙’한 것의 퍼레이드일 거라는 예상을 비웃
기라도 하는 듯했다. 대부분 쇼는 ‘힙스터’ 혹은 ‘쿨 키즈’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전통적이었고, 수공예에 집중하기도 했다. 용감하진 않았지만 시시하지도 않았다. 쇼는 매일매일 전투적일 정도로 많았다. 키즈 컬렉션을 제외하고도 20여 개의 브랜드가 컬렉션을 선보였다. ‘Artem Shumov’ 컬렉션은 모던한 테일러링을 바탕으로 곳곳에 반전이 숨어 있다. 간결한 재킷의 뒷모습에는 토끼, 기린, 비둘기 형상의 귀여운 인형이 달려 있었고, 헤어와 메이크업은 아이가 낙서한 듯 장난스러운
모양새였다. 기본을 잘 지킨 정제된 실루엣과 과하지 않은 위트가 조화를 이루니, 기성세대와 유스 사이의 간극을 적절히 지키는 재야의 고수 같다 할까. ‘Anastasia Dokuchaeva’는 현재와 미래를 아울렀다. 프런트 로에는 셀로판지로 만든 사이파이(Sci-Fi) 선글라스가 놓여있었고 런웨이의 모델들은 모두 이 선글라스를 쓰고 등장했다. 미래 행성의 아바타 같은 모델이 걸어 나왔는데 반대로 옷은 웨어러블하면서 동시대적이어서 더욱 생경했다. 선글라스를 활용한 재미난 컬렉션 중 또 하나인 ‘ZA_
ZA’는 선글라스를 얼굴에 ‘쓰는’ 대신 콧잔등에 ‘그려’ 넣었다. 광택이 있는 소재와 니트 소재의 충돌은 이질적이
면서도 어울렸다. 넷째 날의 마지막을 장식한 ‘Mursak’은 오트 쿠튀르 컬렉션으로 러시아의 전통 패턴을 적극 차용
했다. 동양의 것 같기도, 서양의 것 같기도 한 신비로운 패턴의 향연은 지금 이곳이 러시아임을 다시 한번 인지하게
했다. 반복적인 스케줄로 익숙함과 무료함이 뒤섞일 때 쯤이었던 다섯째 날(실제로는 컬렉션 시작 여섯째 날), 장
소를 이동해 모스코 뮤지엄에서 모스크바의 젊은 디자이너를 위한 전시와 쇼케이스가 열렸다. 기분이 묘했다. 지
금은 그 표현조차 촌스럽다고 생각되는 ‘패션에 미쳐’ 있던 패션학도 시절, 모 대학교의 졸업 패션쇼를 눈앞에서
보고 가슴을 떨던 그때와 같은 떨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시시하기도 했지만 용감했다. 다듬어지지 않아서 더욱 매
력적이었다. 획일성을 거부하는 본능, 널뛰는 에너지, 치기 어린 태도. 기대하던 러시아 패션 그 자체였다.
마지막 날 밤, 각국 프레스를 위한 애프터 파티가 열렸다. 한국의 마감 기간을 핑계 삼아 프레스 모임을 피
해오다가 ‘마지막’과 ‘밤’이라는 두 단어에 이끌려 파티에 참석했다. 인스타그램 세상에서만 보면 각국의 프레스와
근사한 디너 그리고 애프터 애프터(두 번의 애프터) 파티 를 즐겼다.
나의 첫 해외 컬렉션에는 알렉산더 맥퀸도 디올옴므도 톱 모델도 없었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든 잊지
못할 기억이었음이 분명하다. 별은 언제 어디서 뜰지 모른다.

 

© Mercedes-Benz Fashion Week Russia

 

 

21DOT12

 

 

ALEXANDER EROKHIN

ZH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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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KOV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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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OLOGI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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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RILL MINTSEV

YULIA MAKO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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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MA YBAP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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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RILL MINTSE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