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Day Simone Rocha Asked
만나서 반갑다. 한국에는 얼마나 머물렀나. 무얼 보고, 느꼈는가.
벌써 4일 정도 지났다. 어제는 한국의 전통 공예를 다루는 곳을 방문했다. 다양한 곳에서 온 재료가 하나의 작업을 통해 빛나는 모습이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어깨에 걸친 신디 셔먼 스웨트셔츠에 눈길이 간다.
신디 셔먼, 참 좋아한다.(웃음) 이 외에도 루이즈 부르주아, 레이철 화이트리드, 제니브 피기스를 좋아한다. 여성으로 살며, 여성을 아우르고, 뛰어넘기도 하는 그런 아티스트에게 관심이 많다.
얼마 전 런던 골드스미스 홀에서 펼쳐진 2025년 가을/겨울 컬렉션 런웨이에 한국 배우 김민하가 섰다. 시몬 로샤 팀에서 먼저 연락했다고 하는데, 그 일화를 듣고 시몬 로샤 팀이 한국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아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우리가 한국에 진출한 지 수년이 됐다. 이곳 10 꼬르소 꼬모 서울뿐 아니라 한국 이곳저곳에서 우리 옷을 선보이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재능 있는 한국 사람들이 시몬 로샤를 선택해 줘 기쁘다. 특히 김민하 배우는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아티스트다. 그가 시몬 로샤 옷을 즐겨 입는다니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겠나. 우린 그렇게 아주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 같다.
지금 이곳에 전시된 2025년 봄/여름 컬렉션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Screaming, Crying, Laughing, Dying, Flirting…. 쇼 노트의 문구가 유독 인상 깊었다. 시적인 문장이 컬렉션의 출발점이 된 일화 혹은 아이디어가 궁금하다.
2025년 봄/여름 컬렉션의 영감은 안무가 피나 바우슈의 퍼포먼스 <넬켄Nelken>에서 시작되었다. 이 공연은 굉장히 도발적이고 유혹적이면서 감성적이고 수행적이다. 이런 요소를 녹여 내고자 했다. 공연에는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나’와 그 안에 존재하는 개인적인 ‘나’가 동시에 존재한다. 이번 컬렉션은 그 관계성에 주목했다. 쇼 노트에 나열된 단어는 두 자아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묘사한다.
시몬 로샤와 춤! 그 조합이 참 잘 어울린다.
나의 모든 컬렉션이 하나의 춤이고,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컬렉션’ 사이의 관계성을 보여주는 행위 자체이기도 하다. 처음에 컬렉션을 구상하고, 그것을 발전시키고, 대중에게 공개하기까지. 그 과정에서 대중에게 논의되고, 또 어떻게 인지되는지까지. 이런 모든 것이 컬렉션이라는 하나의 춤이 되는 게 아닐까.
시스루 블레이저 안에 자리한 카네이션을 비롯해 보디슈트와 재킷 위에 새겨진 큐빅 카네이션, 드레스의 네크라인에 꽂혀 있는 카네이션까지. 이번 시즌 주를 이루는 카네이션 디테일도 피나 바우슈의 <넬켄>과 연결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넬켄> 무대는 수천 개의 카네이션을 하나씩 꽂아 멀리서 보면 마치 꽃밭처럼 보이도록 연출했다. 하지만 이는 첫인상에 불과하다. 무용수들의 아름다운 움직임에 공연이 무르익을수록 꽃은 밟히고, 차이고, 훼손된다. 그렇게 망가지며 본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다. 인상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같은 꽃을 골랐다.
여기에도 텐션이 담겨 있다. 아름다움과 파멸이라··· 잔인하지만 현실 같다.
현실은 입체적이다. 그래서 쉽게 정의할 수 없지만, 하나를 볼 때 그 이면까지 보려고 하는 건 중요하다.
피나 바우슈가 좋은 공연을 하기에 앞서 계속 질문을 던진 것처럼, 당신도 하나의 컬렉션을 완성하는 데 굉장히 많은 질문을 하는 것 같다. 이 컬렉션에서 가장 중심이 된 질문이 있다면 무엇인가.
무엇을 드러내고 싶은가. 무엇을 보호하고 싶은가. 컬렉션과 개인적인 것, 그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가.
가슴과 허벅지, 허리 같은 신체 부위를 과감히 드러낸 컷아웃 디테일이 인상적이다. 그것들이 화려한 장식과 실루엣 사이 중용을 찾아 주는 것 같다. 시몬 로샤의 세계가 한층 확장되었다는 생각도 들었고. 이번 시즌 중점을 둔 디자인 요소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이번에는 서사와 볼륨감이 덜 느껴지도록 하는 대신, 착용자에게 피부 아래 존재하는 인간적인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다. 특히 우리 몸과 피부를 보여주는 데 새로운 방식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약간의 노출과 보호 아래 여성성을 유지하되 너무 소녀스럽지 않은, 아이러니한 여성의 정신과 상황, 잠재력을 표현하고자 했다.
튀튀 스커트와 새틴, 오간자 등 연약한 소재가 화려한 실루엣으로 거듭나 시선을 끈다. 그걸 보곤 나는 늘 소녀성이 가진 아름다움, 그 이면에 있는 연약함에 더 주목해 온 것 같은데, 투명한 순수함이 이토록 강할 수 있구나 생각했다.
나는 늘 여성스러우면서 강인해지고 싶었다. 이 마음은 감정이지만, 현실에 입각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현실에 뿌리내리고 있는 감성과 감정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한다.
아티스트 제니브 피기스의 ‘The Lady with Bird’(2013)를 비롯한 그의 여러 작품을 발레 메시 보디슈트에 프린트했다.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한 계기가 궁금하다.
2년 전쯤 아일랜드에서 아트 쇼 큐레이션을 연 적이 있다. 여성 예술가들이 모여 진행한 쇼다. 화가, 조각가, 섬유공예가, 사진작가들이 함께했다. 여기에서 제니브 피기스를 처음 만났다. 이전부터 그의 팬이었는데, 그 자리를 계기로 서로 알고 지내게 되었다.
그의 작품은 전형적인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약간은 기괴하기까지 하다. 그 작품을 의상의 일부로 활용하기로 결심한 데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제니브 피기스의 그림이 프린트된 보디슈트에 튀튀를 매치한 룩에서 양극성이 돋보여 좋았다. 그림을 의상에 담기로 결정한 이유와 디자인하며 의도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가 품은 세상이 컬렉션의 스토리와도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 그의 작업에는 자전적이면서 본질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동시에 그 본질적인 것을 살짝 비틀어 보여준다. 그런 세계를 투영하고 싶었다. 그래서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의상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양극의 것을 모두 조화롭게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지금이 시몬 로샤의 아이덴티티 같지만, 당신의 컬렉션은 계속해서 변화와 진화를 거듭해 왔다. 워털루역에서 선보인 첫 컬렉션의 순수함부터 지금의 화려함까지, 나아가는 방향이 궁금하다.
첫 컬렉션! 나도 그 컬렉션을 참 좋아한다. 나의 모든 컬렉션은 이전 컬렉션의 작용과 반작용이다. 시몬 로샤의 맨 처음 컬렉션은 화이트, 에크루, 크림 컬러 등 화이트의 변주로 완성한 것처럼 빈 페이지를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컬렉션마다 새 그림을 완성한다. 도트를 찍기도 하고, 완전히 색칠하기도 하고. 그렇게 각각의 컬렉션이 하나의 챕터가 되고, 그 챕터들은 서로 맞물려 빨간 실로 엮여 있다. 앞으로도 우리의 방식과 속도로 선보이는 컬렉션을 통해 이야기를 이어 나가고 싶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는다는데, 나는 요즘 언젠가 당신이 좋아하는 소설가로 언급한 에드나 오브라이언의 <시골 소녀들>을 읽고 있다. 당신은 무엇을 읽고 있는가.
지금 런던에 살고 있기 때문에 아일랜드 작가들의 책을 읽으며 고향에 와 있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에드나 오브라이언은 존경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작년에 작고했는데, 당시 여성 작가로서 하기 어려운 말을 하며 힘든 삶을 살았다. 지금은 또 한 명의 아일랜드 작가 샐리 루니의 책을 읽고 있다.
샐리 루니의 작품 중 <노멀 피플>이 유일한 한국어 번역본인 것 같다. 그 소설을 접하고 나니 다른 책들도 궁금해지던데, 아쉽다.
나도 <노멀 피플>을 재미있게 읽었다. 문득 당신의 추천도 궁금하다. 역으로 영어 번역본이 있는 한국 소설을 추천해 줄 수 있나.
이번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소설 <그대의 차가운 손>, 그리고 양귀자의 <모순>.
돌아가서 꼭 읽어보겠다.
한 사람이자 여성으로 마음에 꼭 붙들고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게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든,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든.
늘 마음에 두고 있는 건 ‘자아감’이다. 그리고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게 편안한지 생각한다.
Text 솝(Soap, 오유빈)
Photography Shin Kijun
Art 위시(Wish, 김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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