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 거역, 역성


크루넥 니트 톱과 레이어링한 윈드브레이커는 버버리(Burberry), 선글라스는 에디터의 것.


스트라이프 스티치 디테일의 데님 재킷과 화이트 치노 팬츠는 폴스미스(Paul Smith), 화이트 리넨 셔츠는 올세인츠(All Saints), 더비 슈즈는 닥터마틴(Dr. Martens).

스웨터는 페라가모(Ferragamo).
촬영을 시작하니까 바로 몰입하는 모습이 신기했어요. 공연할 때도 첫 곡부터 몰입하는 편이죠?
공연할 때는 바로 몰두하게 돼요. 무대에 오르고, 관객이 보이잖아요. 그 순간의 공기가 있어요. 잠잠하지만 곧 있으면 불타오를 것 같은 그 분위기의 공기를 마시면 저도 모르게 공연에 바로 빠져들어요. 화보 촬영은 조금 다르죠. 많은 생각을 하진 않아요. 포토그래퍼나 에디터가 무언가를 시키면 그대로 해요. 입력값과 출력값이 같아 몰입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 아닐까요.(웃음)
오늘 촬영을 준비하면서 두 가지 키워드를 생각했어요. 영국의 1960년대 사이키델릭, 1980년대 매드체스터, 둘 중 어떤 장르를 더 좋아해요?
음악 장르로는 모두 좋아하죠. 요즘은 스톤로지스The Stone Roses나 샬라탄스The Charlatans를 많이 듣고 있고요. 화보 촬영한 옷도 모두 좋았어요.
음악을 시작한 지 19년이 됐죠. 최근 5년은 쉬지 않고 음악을 한 것 같고요.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다시 음악을 만들면서요. 쉬지 않는데도 힘들기보다는 즐거워하는 인상을 받았어요.
거시적으로 보면 즐긴다는 말이 맞아요. 하지만 그 시간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감정이 나타나죠. 음악을 만들다가 어딘가에서 막혔을 때는 답답하고 좌절하기도 하고요. 절망에 빠진 적도 있지만, 또 기적처럼 해결할 때도 있죠. 결과적으로는 그런 모든 과정을 즐기면서 하는 건 맞아요.
반항을 이야기하지만, 그와 관계없이 착실한 뮤지션이네요.
착실하다는 것이 ‘음악이라는 업을 열심히 수행한다’, ‘끊임없이 작업한다’라는 의미라면 틀린 건 아닌 것 같아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뮤지션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이제 몽상 속에서만 살 나이는 지났으니까요. 제가 하는 이야기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한들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면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음악을 통해 여러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 땅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대단한 철학을 가지고 음악을 만드는 건 아닌데요, 결국 음악을 만들고 돌아보면 현실에 맞닿은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우리 모두가 땅에서 걸어가기 위해 하는 음악이어야 하고, 유희여야 하고, 위로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예 다른 세계로 던져버리기만 하는 음악을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3집 앨범 <역성>은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 만들고 싶었던 앨범의 원형에 가깝다”라고 표현했어요.
원형에 가깝다고 표현했지만, 그 원형이 무엇인지 저도 정확히 표현하지는 못해요. 제가 음악을 시작했을 때 ‘나는 이런 음악을 만들어야지’ 하고 설계도를 완벽히 그린 게 아니니까요. 건축가를 예로 들면 이런 상태였죠. ‘이런 형태의 주택과 빌딩, 공원을 만들고 싶다’는 구상을 생각하는 단계요. 그런데 앨범을 만들 때는 ‘어릴 적 원하던 앨범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어린 시절에 막연하게 하고 싶었던 음악의 형태를 이제 완성한 거군요.
앨범을 완성하고 보니 학창 시절에 낙서장에 그려둔 설계도와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죠.
무명 시절을 오래 거쳤고,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어요. 그 이후에는 5년 동안 야생마처럼 쉼 없이 달려왔죠. 마침내 대곡이 가득한 <역성>을 발매했는데요, 이 앨범은 차곡차곡 쌓아온 이승윤의 세계관을 확실히 보여주는 마침표처럼 느껴져요.
제가 바쁘게 지낸 시기는 최근 5년이 아닌 것 같아요. 지금은 음원 사이트에서 내렸지만 2016년에 첫 정규 앨범을 냈어요. 그 이후에 EP도 2장 발매하고, 밴드 활동도 했죠. 단순히 5년이 아니라 10여 년을 달려온 것이죠. 정규 1, 2집을 발매하고 욕심이 생겼어요. 단순히 여러 곡을 묶어 앨범으로 내는 게 아니라 이승윤의 자의식을 몽땅 넣은 앨범을 만들고 싶어서요. 2집을 만들 때까지 ‘이승윤은 이런 세계관을 구축하고 싶은 사람입니다’라는 내용을 담았어요. 정규 3집에는 ‘이승윤의 여정에 함께하는 모든 동료와 함께 보람과 자긍심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담았고요. 그렇게 강렬한 자의식이 담긴 앨범이 탄생했어요.
강렬한 자의식이 담긴 앨범을 마주하니 어때요.
지금 이 시점만 두고 본다면, ‘나는 이 앨범을 만들기 위해 음악을 했구나’ 생각해요. 문득 ‘<역성>을 내려고 음악 했지’라는 생각이 떠오를 정도로요.
이 정도로 마음에 드는 작업물을 만든 적이 있어요?
저는 제가 만든 모든 작업물을 사랑해요. 하지만 1집과 2집은 창작자라면 누구나 느끼는 어떤 아쉬움이 있어요. 작곡과 녹음 그리고 마무리 단계에서 현실적으로 타협한 지점이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1집과 2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만들었다’ 생각해요. 다음에는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지 알게 됐고요. 3집은 달라요. 모든 작업을 끝내고 나서 이 완성본을 더 건드리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거든요. 보통은 앨범을 발매하고 나서 음악을 들어보면 ‘이 부분은 언젠가 다시 녹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거든요. 3집을 듣고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어요.
<역성>을 듣고 사운드를 어떻게 조정했는지 궁금했어요. 최근 들은 앨범 중 가장 시원하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3집을 만들기 전까지 여러 페스티벌과 무대에서 공연을 했어요. 공연에 관한 누적된 경험이 생겼죠. 공연 에너지를 앨범에 담고 싶었어요. 정갈한 느낌보다는 거칠고 폭발적인 소리를 들려주고 싶었죠. 녹음 방식도 많이 연구했고, 다양한 시도를 했어요. 저와 밴드 멤버들이 만족할 때까지 계속 방법을 바꾸면서 음악을 만들었죠. 이 부분이 중요해요. 왜냐하면 이전까지는 그러지 못했거든요. 그때는 ‘이만하면 됐지’ 하는 생각이 들면 녹음을 끝냈어요. 이번 앨범은 많은 부분을 저희 작업실에서 진행했어요. 그래서 만족할 때까지 계속해서 작업했죠. ‘후반 작업에서 보정해야지’ 하는 생각을 버리고, 녹음실에서 모든 걸 끝내겠다는 마음으로요.
예전에 앨범 작업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봤어요. 멤버끼리 녹음본을 듣고 서로 좋다며 칭찬을 했다고요.
<역성>은 자의식 과잉으로 탄생한 앨범이니까요. 멤버끼리 녹음본을 듣고 감탄한 부분은 너무 많아요. 기타 솔로, 드럼, 베이스 등 무엇을 들어도 “너무 좋다”는 말을 연발했죠.
자의식 과잉 상태에서 작업은 어땠어요.
예전과 달랐죠. 음악을 만드는 과정을 ‘10’이라고 한다면 이전까지는 제가 7 또는 8까지 만든 뒤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았어요. 이번에는 ‘처음부터 멤버들과 앨범을 같이 만들자’ 결심했죠. 멤버 모두의 자의식 과잉이 필요했거든요. 물론 뼈대까지는 주로 제가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멤버가 주인의식이 많이 생겼어요. 더 많은 감정을 교류하고, 더 진지하게 음반 작업에 참여했죠. 이 음악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풍부한 감정선이 생긴 거예요. 자연스레 논쟁과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뿌듯했어요. ‘너희도 이 앨범을 잘 만들고 싶구나’ 마음이 들었으니까요.
멤버들과 깊이 교류하면서 만들면 자연스럽게 승윤 씨의 의견이 배제될 때도 있었겠죠. 그 과정은 어땠어요.
멤버 모두 듣고 자란 음악이 달랐어요. 제 경우 되게 마이너한 음악을 들은 건 아니지만, 영국 밴드만 듣고 자랐죠. 다른 멤버는 미국과 일본 쪽 음악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예전에는 “이건 내가 추구하는 스타일과 다르다”라며 배제했을 요소도 다 넣었어요. 일단 개개인이 좋아하는 부분을 과감히 시도하고, 그 이후에 뺄지 말지를 결정한 거죠. 비빔밥처럼 모든 걸 버무린 다음에 “이 재료는 빼고, 이 재료는 넣자” 이런 식으로 결정했어요.
앨범 수록곡 ‘캐논’은 드러머가 꿈속에서 들은 멜로디를 차용해 만들었다고 들었어요. 이것도 멤버들과 함께 만든 앨범이기에 가능했던 일이겠죠?
3집을 만들 때 멤버 모두가 참여했다고 했잖아요. 그렇지만 앨범 작업 초기에 음악의 뼈대는 제가 주도적으로 만들었어요. 저는 이 방식을 좋아하지만 한계가 있었죠. 공동 작업이라고 했지만 어느 지점에 막히면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그럴 때 ‘이런 식이면 공동작업이라 할 수 없으니, 다들 의견을 좀 내!’라는 의미로 멤버에게 말을 한 적 있어요. 그 말을 하고 어느 날 뒤에 드러머 형이 “나나나나나나” 여섯 글자의 멜로디를 들려주고 수줍게 “좋지 않냐”고 묻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멤버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고 독려한 상황이니 그 말을 무시할 수 없더라고요. 그 여섯 글자짜리 멜로디를 가지고 열심히 음악을 만들었죠. 작업하다 보니 진행 구조가 캐논 코드인 거예요. 원래부터 캐논 코드로 음악을 만들고 싶던 터라 ‘이참에 잘됐다’ 싶었죠.
본격적으로 음악 작업을 한 지 10년이 지났어요. 그중 많은 것이 바뀌었을까요?
음악을 만드는 방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어요. 예전부터 음악을 만들던 방식이 있었고, 지금도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음악을 만들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능성을 접했죠. 음악을 혼자 만드는 것은 아니니까 여러 동료를 만났고, 그들에게서 더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는 힌트와 조언을 얻었고요. 거기에 더해 마름모라는 회사를 만나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어요. 가장 중요한 변화는 제 음악을 듣는 분이 많아졌다는 것, 그리고 그 음악에 수많은 의미를 부여해 주시는 팬분들이 계시다는 것이죠.
이제 슬슬 새로운 음반 작업에 들어간다고요.
이제 두 달 정도 쉬었으니까 새로운 음악 작업에 시동을 걸기 시작하는 때예요. 새 음반을 만들자는 목표가 있는 건 아니고요. 예열을 하고 있달까요.
쉬면서 뭐 했어요.
별거 없어요. NBA랑 F1 보는 정도? 이 두 스포츠가 요즘 춘추전국시대처럼 여러 팀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중이라 보는 재미가 있어요.
Text & Fashion 바론(Baron, 윤승현)
Photography Kim Jiyoung
Art 위시(Wish, 김성재)
Hair & Makeup Lee Seoyoung
Assistant 초이(Choi, 최승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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